하트인부산 P.2

[하트人부산] 열세 번째 이야기

내가 홀로임이 서글플 때, 누군가의 기척은 큰 반가움이다. 
포근한 가슴팍에 안겨 듣는 엄마의 심장 소리나
현관문 밖으로 택배가 바닥에 놓이는 소리에도 우리는 행복을 느끼듯이, 
타인의 안녕과 존재의 확인이 오히려 내 삶을 안정시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잠시 잊어도 좋겠다. 
초대하지 않은 재앙들이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 지구가 온통 물과 불로 몸살을 앓는 동안 
내 사람들은 안녕한지. 

개금동에 홀로 살아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현관을 두드리면 안부가 담긴 반찬통이 되돌아 오고, 
배리어 프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도 누군가의 눈을 대신해 
이 여름 하늘의 구름이 어떤 속도로 흐르는지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어 
희망이라는 것이 그래도 여전히 곁에 있음을 느낀다. 

한 차례 비가 쏟아진다. 
아주 오랜 세월을 묻어 두고 묵혀 두었던 것들이 솎아지고 엎어져 새롭게 시작되려나 보다. 
비가 그치고 나면, 그만한 세월 동안 잊고 지냈던 것들이 다시 보이고, 다시 지각되며, 
끊어졌던 것들은 다시 이어질 것이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 보고 싶은 소중한 일상에 작은 인기척을 내어 보면 어떨까.
오늘은 내가 먼저 두드려 본다. 잘 있어요? 나도 잘 있어요. 보고 싶네요, 우리 곧 봐요.

[하트人부산] 열두 번째 이야기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아무리 생각해도 잘 지은 가사다. 당연할수록 가치평가는 낮아지는데, 이건 사람 간 관계에서나 물질을 대하는 태도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한정판이 갖는 프리미엄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그러나 부재에 대한 타격은 당연한 것일수록 더욱 강하다. 하늘이 사람에게 허락한 햇살과 맑은 빗물, 쾌청한 공기, 이런 것들이 이 땅의 모든 존재에 생명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을 때보다 훨씬 더 절감하게 되는 요즘, 어쩌면, 무엇으로도 맞바꿀 수 없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주어지도록 한 신의 선물인지도 모른 채 경홀했던 것들-거저 주어진 것 같으나 실은 축복이었던- 것들을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건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인지도 몰라.” 어린 왕자는 진즉에 이치를 알아버렸나 보다. 학창시절부터 십수 년간을 지나온 집 앞 내리막길도 재개발이 시작됐고, 오래도록 들락거렸던 떡볶이 집도 헐리고 없다. 상실은 때로 다른 것으로 채워지기도 하겠지만, 잊지는 말자. 그것들로 우린 행복했던 때가 있었음을. 그리고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사랑할 것. 만나고 헤어지며 쥐었다 놓치는 일의 반복인 삶이지만 끝까지 없어지지 않고 자꾸만 더 자라는 건 아마도 성숙일 것이다. 한 그루 나무가 그렇듯이 우린 성숙의 대가로 행복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되지 않을까. 기꺼이 길들여지길 원하고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면서 말이다. 

곧 다시 만날 우리의 환한 미소를 기대하며.

[하트人부산] 열한 번째 이야기

이번 겨울은 비교적 춥지 않았던 터라, 만물의 이치인 것도 미뤄두고 봄이 오는 것을 의심했다. 봄이 오긴 왔다. 대신, 우리는 제법 혹독한 봄을 맞게 됐다. 베란다 밖으로 고개를 내민 벚나무 가지들을 바라보며 간신히 봄을 체감하고서 진정한 휴식이란 실은 무엇이었는지 그 의미를 재고하는 하루. 와중에도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은 집에서도 뭔가를 만들고, 젓고, 움직이기도 했다. 

달라진 일상에서 당연한 것들을, 아니 당연했던 것들을 돌아본다. 겨울 다음에 봄이 오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웠던 것들에 이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감사를 잊고 살았던 삶에 새로운 동기를 쥐어 준다. 거리에 흩날리는 벚나무 꽃잎들이 이렇게 황홀하고, 잔땀을 닦으며 오르는 등산 길이 이렇게 산뜻하고 쾌청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소홀히 여기고 있던 건 아닐까. 친절과 이기심, 경제의 순환, 계절의 변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경외를 넘어 공포마저 든다. 역시,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들보다 힘이 세다.

새로운 계절을 맞는다는 것은 옷장을 정리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두꺼운 옷 대신 가볍고 산뜻한 옷을 꺼내면서 춥고 무거웠던 시간들을 정리해 본다. 버릴 것과 깊숙한 곳에 밀어 넣어 두어야 할 것, 새로 세탁을 할 것과 다려서 걸어야 할 것. 실은, 새해에 꼭 필요한 일.
옷장 정리란 그래서 비단 옷가지들을 나누고 거르는 일인 것만은 아니다. 버려야 하는데도 놓지 못하는 무쓸모한 집착 앞에 때로 소심해지기도 하고, 가슴 깊이 꿀꺽 삼켜버려야 할 기억들 앞에서도 구두쇠가 된다. 청소란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알고 과감하게 버리는 일에서 시작한다고, 몇 해 전 정리수납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하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더 새로워지는 일이 그렇다.

새로운 경험과 무능을 극복한 자에게 생일의 의미를 부여하는 호주의 무탄트 족처럼, 우리는 봄을 날린 채 더운 여름을 맞기보다, 이제서야 봄다운 봄을 맞게 될 것을 기대한다. 모든 날 모든 순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는 다행스런 행동이, 커피 한 잔을 위해 400번(?)이나 젓게 만들었으니까. 일일신 우일신, 어려움이 있어도 날로 새로워질 내일을 기대한다. 낙동강변에 쏟아지는 꽃비만큼이나 조금은 늦은 우리의 봄도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기에.